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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둔촌 이집 문학상 홍성암 소설가(본상) 한새빛 시인(우수상) 수상

고려말 성리학자 이집(李集) 효행과 충절심을 기려 제정...광주이씨대종회와 한국작가 공동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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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철수기자 2018-09-21


[문학=경기인터넷뉴스] 옛 광주를 본향으로 하는 둔촌(遁村) 선생의 효행과 충절을 기리고, 한국문학 발전을 위한 <둔촌(遁村) 이집(李集) 문학상>을 제정하고 첫 수상자를 선정했다.

 

17일 오후 3시 동숭동 함춘회관에서 진행된 시상식에서 홍성암 소설가가 본상을, 한새빛 시인이 우수상을 받았다.

 

▲ 제1회 둥촌이집문학상...본상 수상자 홍성암 소설가(동덕여대 총장대행)와 김건중 문학상 운영위원장     © 한철수기자

 

이 문학상은 광주이씨대종회와 한국작가 공동으로 주관했으며, 이날 시상식에는 광주이씨대종회 이옥재 도유사와 각 종파 도유사들, 한국작가 협회장 김건중 소설가, 우한웅 소설가(전 서울대 교수. 심사위워장), 신세훈 소설가 (전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순수문학 박영하 발행인 등 200여명이 자리를 함께 했다.

 

-수상자 홍성암 소설가, 한새빛 시인...약력과 작품집 소개 

 

홍성암 소설가는 고향 강원도 강릉을 소재로 한 소설집 <영진리블루>, 한새빛 시인은 나무를 주제로 한 연작시 <나무>로 선정됐다.

 

홍성암은 1942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으며, 한양대 대학원 국문학과 석.박사 학위를 수료 받았다. 1988년 <한국 근대 역사소설 연구>로 문학박사를, 1980년 <겁화경>으로 신인상을 받았다. 1981년 <조기>현대문학에 추천 문단 데뷔하였으며, 한국소설가 협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회원, 국제펜 한국본부 이사. 한국작가교수회 상임 부회장, 한민족문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고, 2018년 현재 동덕여자대학교 총장 직무대행으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큰물로 가는 큰고기, 어떤 귀향, 가족, 모깃불, 세발까마귀의 고독, 다리가 없는 통닭> 등이 있고, 대하역사소설 <남한산성(9)> 있다. 1997년 한국소설문학상, 2000년 한맥문학가협회상을 수상하였다.

 

▲ 제1회 둔촌이집문학상...우수수상 수상자 한새빛 시인과 김건중 문학상 운영위원장     © 한철수기자

 

한새빛 시인은 충북 충주 출생으로 한국문협이사, 국제PEN클럽 기획위원, 경기문협회장, <한국작가>발행인, 경기도문학상, 경기예술대상, 성남예술 대상 등을 받았다.

 

지은 책으로는 <꽃불, 꿈속으로, 나의 계절, 나무의 외출, 꽃의 반란> 등이 있다.

 

-옛 광주고을 전역...둔촌문학 행사 열려

 

한편 광주이씨대종회에서는 둔촌선생을 기리기 위해 경기도 광주시에서 둔촌백일장, 경기도 성남시에서 둔촌 청소년 문학상백일장·둔촌 한시백일장·둔촌문화제를 서울시 강동구 둔촌동 청소년백일장등을 펼치고 있다.

 

또한 중국 심양에서 조선족을 대상으로 한 둔촌중국백일장과 한중 한시낭송회 등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 한국작가와 기성문인을 대상으로 제1회 둔촌문학상은 제정하기에 이르렀다.

 

▲ 둔촌 이집 선생 초상화     © 한철수 기자

 

 

-강동구 둔촌동 지명유래...이집의 호에서 나와

 

고려 말 문신 이집이 신돈의 숙청을 피해 몸을 숨겼던 곳으로 당시 현 둔촌주공아파트 동쪽에 있는 야산에 굴이 많아 이집 선생이 그 굴에 몸을 숨기면서 후손들에게 자신의 고생을 기억하라는 의미로 둔촌이라고 호를 지었다고 하며 둔촌동은 그의 호를 따서 지은 동명이다.

 

참고로 둔촌 이집의 묘역은 오늘날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하대원동에 있는데, 이 일대를 지나는 도로의 이름이 이를 반영한 둔촌대로이다. 묘역은 2008526일에는 경기도기념물 제219호로 지정됐다.

 

-둔촌 선생은 고려말 충신...한음 이덕형의 8대 조부

 

둔촌 이집 선생의 본관은 광주이고 초명은 원령(元齡), 자는 호연(浩然)로 광주 향리 이당(李唐)의 아들로 1327년에 태어났다

 

충목왕 때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문장을 잘 짓고 지조가 굳기로 명성이 높았다. 공민왕 17(1368) 신돈의 미움을 사 생명의 위협을 받자, 가족과 함께 영천으로 도피하여 고생 끝에 겨우 죽음을 면하였다.

 

1371년 신돈이 주살(誅殺)되자 개경으로 돌아와 판전교시사에 임명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여주 천녕현에서 재야에 묻혀 살면서 시를 지으며 살다가 1387년 61세로 일생을 마쳤다.

 

 

▲ 제1회 둔촌이집문학상...이집묘역(성남시 중원구 하대원동. 경기도유형문화재 제219호)     © 경기문화연구원

 

 

그의 시에는 꾸밈과 우회보다는 직서체(直敍體)에 의한 자연스럽고 평이한 작품이 많다. 그는 당시 임심문을 비롯한 60명에 달하는 많은 인물들과 시로써 교유하였다. 특히, 이색·정몽주·이숭인 등과 교유했다.

 

<동국여지승람>에 그가 조선조에 벼슬을 지냈다고 잘못 기록된 것을 8대 손인 이덕형이 광해군3(1611)에 바로 잡았다. 광주 구암서원에 제향되었다. 저서로 <둔촌유고>가 있다

 

기사입력 : 2018-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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