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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집 서울, 소설가 최학송을그리워하다

그립습니다! 182번째 손님...서해의 문학과 인연설 펼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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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철수기자 2018-03-19


 

[문화=경기인터넷뉴스] ‘문학의 집 서울은 지난 16일 서해 최학송 소설가를 주제로 한 행사 그립습니다, 금요문학마당을 진행했다. 이 프로그램은 작고한 문인의 문학세계와 삶을 조명하기 위해 매월 한차례 마련한 자리로 서해는 182번째로 초대됐다.

 

서해 최학송 소설가는 1920년대 빈궁문학의 대가로 경험하지 않는 것은 쓰지도 않는다라고 할 정도로 당시 리얼리즘 문학을 주도한 작가로 망우리공원에 누워있다.

 

▲ 서해 최학송 묘역...매년 추도식을 갖는다     © 경기인터넷뉴스

 

 

이날 행사는 음악으로 시작하고 작가의 문학세계와 회고담, 그리고 소설낭독 등 순으로 이어졌으며, 최학송기념사업회, 서울교원문학회, 한국내셔널트러스트, 문학의집 서울 회원 등 50여명이 자리를 함께했다.

 

이날 행사를 이끈 정종배 시인은 오늘 행사는 몇 해 전 문학의 집 서울 김후란 이사장님과 만남에서 서해선생을 소개를 했는데, 잊지 않고 행사를 마련해 주셨다. 서해와의 첫 인연은 50년 전 고국, 탈출기소설이다. 그리고 10년 전부터 서해의 묘지 관리인으로 자처하고 인연을 맺은 것을 계기로 최학송기념사업회를 결성하게 됐다.”라고 회고 했다.

 

▲ 그립습니다. 소설가 최학송...박수진 이진훈 시인의 탈출기 낭독  © 경기인터넷뉴스

 

 

이날 행사는 이천서희중창단이 동요로 문을 열었고, 정승재 소설가의 사회로 문학평론가 이명재 교수가 서해의 문학세계를 소개했으며, 박수진·이진훈 시인의 낭독소설, 김승종 교수가 문학적 만남을 정종배 시인이 인간적 만남을 회고했으며, 소프라노 국은선 성악가의 가곡으로 문을 닫았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박수진·이진훈 시인이 서해의 대표작 <탈출기> 전문 낭독이다. 60대 시인들이 경험했던 보릿고개와 탈출기 주인공들이 모습이 낭독 내내 실루엣으로 겹쳐보였다.

▲ 그립습니다. 소설가 최학송...정종배 시인의 회고담     © 경기인터넷뉴스

 

 

 

이 작품은 세상에 팽배한 빈궁과 부조리함에 대한 분노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으로 유명하다. 배고품이 주제다. 화자인 박군김군에게 보내는 편지의 형식을 취해, 자신의 감정을 설득력 있게 전달했다는 평을 받는 작품이다.

 

서해는 함경북도 성진에서 소작농의 외아들로 출생했고, 아버지가 간도로 떠나자 어머니의 손에서 유년시절과 소년시절을 보냈다. 유년시절 한문을 배우고 성진보통학교에 3년 정도 재학한 것 외에 이렇다 할 학교교육은 받지 못하였다. 소년시절을 가난 속에 지내면서 <청춘(靑春), 학지광(學之光) 등을 사다가 이광수의 글을 읽으면서 문학에 눈을 떴다.

 

 

▲ 서해 최학송     © 경기인터넷뉴스

 

1918년 고향을 떠나 간도로 건너가 방랑과 노동을 하면서 문학 공부를 계속하였다. 1924년 작가로 출세할 결심을 하고 노모와 처자를 남겨둔 채 홀로 상경하여 이광수를 찾았다. 그의 주선으로 양주 봉선사(奉先寺)에서 승려 생활을 했으나, 두어 달 있다가 다시 상경하여 조선문단사(朝鮮文壇社)에 입사했다.

19241월 동아일보 월요란)에 단편소설 <토혈(吐血)>을 발표한 일이 있으나 같은 해 10월조선문단에 <고국(故國)>이 추천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토혈>이 처녀작이라면, <고국>은 데뷔작이라고 할 수 있다.

▲ 그립습니다 최학송 소설가...최학송기념사업회 회원     © 경기인터넷뉴스

 

이때부터 대략 장편 1, 단편 35편 내외를 발표했다.193279일 위문협착증으로 우리나라 최초로 문인장으로 치러졌으며 711일 미아리공동묘지에 묻혔다. 1958년 미아리에서 망우리로 이장와 60년째 망우리공원에 자리 잡고 있다

 

 

기사입력 : 2018-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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